0. 도입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은 중국의 명말-청초 사상가 황종희(1610~1695)가 지은 정치 철학 저서이다. ‘밝아 올 아침을 기다린다’는 서문의 은유가 암시하듯, 이 책에서 황종희는 그의 시대 전제 군주제의 폐단을 지적하고, 공리적 민본주의에 입각한 이상 국가의 초상을 그린다. 나는 이러한 정치적 구상으로부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역시 유효하게 쓰일 의미를 발췌하여 재구성하고, 이에 *작은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1. 공직자의 직분
황종희에 따르면, 군주와 신하는 국가의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공직자에 불과하다. 누구라도 국가를 잘 다스릴 수 있다면 공직자가 될 수 있으며,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 공직자는 마땅히 교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관직은 그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에게 전하여야 한다. 일정한 기준 없이 기존 인사와 가까운 사람에게 세습하는 관행은 옳지 않다.
군주의 지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군주와 신하는 ‘공익’이라는 공동 목적을 둔 협업 관계이다. 국가는 한 사람이 통치하기에는 너무 넓어, 여러 사람의 분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군주는 신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결코 신하는 군주의 비위를 맞추는 노예가 아니다. 오히려 군주의 벗으로서, 친구가 잘못된 길로 들지 않도록 바로잡아 주는 존재이다.
*나는, 군주와 신하가 사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를 더 깊이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는 것은 뻔한 이상론일 뿐, 효과적인 실천이 동반되지 않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째서 공직자가 공익을 사익에 우선해야 하는지, 윤리학적으로 엄밀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자의 독식이 정말로 나쁜 것인가? 공익 추구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비록 우리의 상식일지라도, 그런 만큼 그 상식을 논리적으로 지독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만큼이나 스스로의 눈을 가리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2. 법의 역할
법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지도자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다스리는 법이 있고 난 뒤에 다스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지나친 규제로 사람들의 손과 발을 묶어두면 유능한 사람이더라도 주어진 틀 안에 안주하며 혁신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법망이 엉성하더라도 잘 다스려질 수 있고, 법망이 치밀하더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법 아닌 법’, 이른바 우리 내면의 도덕 법칙이 아닐까? 외부에서 강제되는 실정법은 우리가 따르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빈틈이 보이게 마련이다. 법의 강제가 미미하더라도 사람들이 선량한 마음씨를 갖추고 있다면 사회는 잘 운영될 것이다. 도리어 규제가 촘촘하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부족하여, 사회적으로 많은 비용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촘촘한 규제보다도 덕성의 함양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우리나라의 헌법을 떠올렸다. 지도자의 권한과 의무를 상위법에 규정함으로써 지도자의 권력 남용을 방지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군주제의 단점은, 군주가 엇나갈 때 이를 견제할 방법이 약해, 온전히 한 사람의 인품에 국운이 달렸다는 불확실성이다. 국가 시스템은 지도자의 자리에 어떤 사람이 오르더라도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국가 정책은 그 영향이 매우 크고 넓으므로 결코 지도자 한 사람의 좁은 식견과 즉흥에 따라 가벼이 시행될 일이 아니다.
3. 교육과 언론
정책의 옳고 그름은 학교의 자유로운 공론에 맡겨야 한다. 주기적으로 학자와 공직자들을 모아, 함께 국가의 문제점을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각지에서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글로 올릴 수 있게 하며, 국가의 모든 일이 누구에게나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권력자는 학생들의 시위를 탄압해서는 안 된다.
학교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지, 시험으로 입신출세의 꿈을 불태우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단순 암기가 아닌, 의미를 물어야 한다. 수험생은 어느 한 견해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고, 기존의 모든 견해를 정리하고 난 뒤에,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전개해야 한다.
*학자들에 의한 정책 토론이라는 요소에 대해, 나아가 각 분야마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누어 통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다수에 의한 통치는 다수의 다양한 관점을 공정하게 반영하기보다는 외려 또 하나의 독단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는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이뤄내느냐보다는 무엇을 보여주는지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멀리 보면, 시험 점수가 진정 중요한가. 배운 것을 통해 실제로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게 훨씬 중요하지 않은가. 공부가 특정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제로섬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4. 인재 선발 및 임용
가장 유능하고 현명한 사람을 발탁해야 한다. 시험은 동등한 조건 하에, 집안 배경 등 어떠한 능력 외의 요소와도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인재 선발 제도는 다양하고 넓어야 한다. 어떤 한 시험에서 불합격하더라도 다른 과목으로 합격할 수 있어야 한다. 재능을 평가하는 방법이 오로지 과거제도라는 한 가지 길 뿐이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관직에 오를 방법이 없을 것이다. 인재를 썩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만 임용 절차는 엄격해야 한다. 과거에 급제하더라도, 곧바로 관직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 하루아침에 중요한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능력이 없는데도 관직에 운 좋게 몸담고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여러 관문을 통해 인재를 선발하되, 자기의 견해를 잘 설명하는 자에게만 임시로 직책을 맡겨 그 성적을 살펴본 뒤에 정식으로 발령한다.
*황종희의 생각에 나도 동의한다. 사람의 재능이 한 가지 기준으로만 측정될 수는 없다. 더구나 그러한 모종의 기준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의미가 퇴색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결국 현실에서 어떤 성과를 내는지가 중요한데, 문제는 그러한 인사 제도를 어떻게 구현하느냐이다. 황종희는 추천 제도 등 여러가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였으나, 그 실효성은 실제로 사회에 적용해 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5. 지방 자치와 군사
국경 지대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독립적인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 정부는 세금을 자체적으로 징수하여 재난에 대비한다. 지방 정부가 스스로 책임지는 구조일 때 전력이 견고해진다. 중앙 정부가 모든 자원과 병력을 관리하게 되면, 공격받는 한 지방 때문에 다른 지역들이 취약해질 수 있다.
*현지의 사정은 현지에서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러나 국가 전체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지방 자치권과 중앙 통제권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6. 경제
공업과 상업이 경제의 근본이다. 무당, 사치품, 술과 같이 국민의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은 금지해야 한다.
국가 경제가 나빠지더라도 돈을 받는 사람들은 곤란하지 않다. 그러나 국민들이 나라의 부양만 받는다면 결국 누가 일을 하겠는가? 국가는 국민들을 기르는 곳이 아니다.
*무엇이 필수적이고 무엇이 필수적이지 않은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어떤 일이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국가가 정확하게 판별할 역량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황종희와 다르게, 정부는 되도록 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적절한 교육만 뒷받침된다면 국민들 스스로 지출에 신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가치관을 국가가 국민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마찬가지로 이재명 정부의 대규모 지원금 살포가 장기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지원금 대상을 선정하고 지급하는 과정 역시 비용이다. 그러므로 지원금은 정말 긴요한 곳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자립해서 생산 활동에 참여해야 국가 재원을 유지할 수 있다. 자녀의 독립을 돕는 데까지가 부모로서의 역할이다. 그 이상 관여하면 자녀 교육을 망친다.
7. 총평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은 이상 국가에 대한 또 하나의 훌륭한 스케치이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한 사람의 빈약한 스케치에 그친다. 모든 정치사상은 현실에서 혹독한 테스트를 거쳐야만 비로소 그 실질적인 의미가 완성된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어떠한 돌발 상황도 없이 고스란히 이루어지는 계획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방식에 완전무결한 답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는 이상이 여러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계속해서 좌절될지라도, 최선에 도달하고자 애쓰는 과정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우리는 거기서 언제나처럼 중요한 교훈을 얻고, 생각을 다듬으며, 차차 그 최선에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도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러니 당장 실패할 것, 거절당할 것이 무섭다고 은둔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길을 가로막는 것은, 눈앞의 장애물이 아닌, 이를 돌파하기를 주저하는 스스로의 막연한 두려움이다.
이상 국가를 향한 황종희의 간절한 소망에 이어, 미약하지만 나 역시 그 여정에 동참하고자 한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과 좁은 식견만으로는 결코 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치적 구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의 꾸준한 논의와 실천이 필요하다. 모든 관점은 나름대로 진리의 한 면을 비추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학자의 말도, 군인의 말도, 공장 노동자의 말도 귀기울여 들어 보아야 한다.
지금도 수많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 정보들을 어떠한 기준점도 없이 무질서하게 방치하고 있으니 정작 무슨 결단을 내리기에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리하여 우리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바는, 개인으로서의 하나를 전체로서의 하나로 조화시키는 존재, 다시 말해 자유롭고 합리적인 윤리 공론의 장이다. 나는 이러한 도덕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꿈꾼다. 황종희가 말하는 학교의 공론,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윤리적 담론,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무지의 자각과 도덕적 성찰의 보편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적절한 규칙에 따라 운영되는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의견을 보충하고 종합함으로써 공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매우 어렵겠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나는 그 주요 수단으로서 자체적인 시스템을 갖춘 인터넷 커뮤니티를 생각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기획은 추후 다른 지면에서 다룰 것이다)
언젠가 환한 아침이 온다면, 언젠가 또한 기나긴 밤이 드리울 것이다. 물론 그때 당신은 나와 같은 달을 바라볼 테다. 시대와 장소를 건너, 함께라면 우리는 그 어느 깊은 어둠도 두렵지 않다.
- 참고문헌
1. 황종희,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 최병철 옮김, 홍익출판사, 1999년
2. 위키백과 「황종희」
https://ko.wikipedia.org/wiki/%ED%99%A9%EC%A2%85%ED%9D%A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