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상대방이 썼던 단어를 재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고, 관찰해보면 많은 사람이 그렇다.
아마 최근에 들은 말이 머릿속에서 꺼내기가 쉬워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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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된 경험을 기반 삼아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은어를 만들어 쓰는 걸 좋아한다.
은근히 동질감을 느낀다. 전달력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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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섞여가며, 예술은 새롭게 피어난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편견 없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예술만 그런 것은 아니고 모든 학문이 그렇다. / 모든 새로운 것은 모방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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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한다. 그러나 작곡 행위의 주목적은 문건서 철학의 효과적 전파 그리고 따라올 세상의 진보이다.
[문학은 아름다운 가사가 될 것이고, 철학은 본질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가사 없는 기악곡, 쓸모없는 시, 난해하기만 한 철학 글; 지금은 분리되어 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삼위일체를 이룰 것이다.]
[나의 내면 깊은 분노의 원인 : 세상의 부조리 / 하루하루 힘을 길러, 하나하나 부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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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음악을 듣고, 춤을 춘다.
[2022 12 26 흥겨운 박자(2023 01 12 선율)에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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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낸다는 것은 상대방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으로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구체적인 목적의식 없이 감정적으로만 행동하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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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우리의 작별 인사가 죽은 자에게는 닿지 않을지라도
이 과정에서 살아있는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다면...
[누군가를 잃고 더이상 슬퍼하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죽음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떠나보낼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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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고치고 싶다면
미워하지말고, 사랑해라!
[그렇다고 미움이라는 감정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고쳐 쓸 가치도 없는) 어떤 존재를, 철저히 부숴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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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일들이, 돌이켜보면 참 소중한 추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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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도 같이 해야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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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사적 감정 해소를 위해 남용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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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젊은 시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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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 없는 일을 하면서 살면, 인생이 행복하지가 않다.
물론 현실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가슴 한 편에는 늘 꿈을 품고 살아가는 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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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은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다. (비난을 듣게 되면 순간 힘이 빠진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런 누군가의 관심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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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공부가 안 된다. {작성 당시 시험 기간이었음.}
자꾸만 딴 생각이 난다.
무쓸모한, 깊은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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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바라본다.
묵묵하게,
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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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암만 예쁜 여자를 봐도,
'저 사람도 이미 임자가 있겠지.' 혹은 '나와 무관하게 생겼구나.'
하고 무심한듯 지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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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있으니, 사는 게 의미가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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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어떻다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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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적게 하라. (최소한 말을 꺼내기 전, 사람들이 그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신중히 생각해보라.) (또한 내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일을 왈가왈부하려는 건 아닌지, 아무리 답답해도 잠시 물러나서 관망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뱉고 보는 무책임한 말은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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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고독은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값진 시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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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말 못할 고통들이, 이 모두를 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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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읽기에 난잡하지 하지 않을 최소한의 논리적인 흐름만 갖추면 되지, 꼭 화려한 미사여구로 꾸며져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글에는 반드시, 글쓴이의 마음(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2022 06 10 그것이야말로 '살아 숨쉬는 글'이다.]
{수정 : 그러나 글에는 반드시, 필자의 감정(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 그러나 글에는 반드시, 글쓴이의 마음(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2022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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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은, 훗날 독자가 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023 07 19 왜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을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하기 쉽다.'라고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2024 04 16 개념은 구체적인 현상들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현상이 관념에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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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힘들어도, 아무 말 않다가, 그냥 푹 자고 만다.
내일, 다시 시작하는거야. (2022 05 20 그렇게 독한 의지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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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지식도 쌓지 않고 무작정 어려운 책을 읽는 건,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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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힘겹게 찾아냈다면,
분명히, 그 책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이해 되는 것도, 기억에 남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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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내게 철학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받는가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철학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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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신념을 지켜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적을 만들지 않는 편이 좋다. 인간관계의 방치 속 쌓여가는 증오는, 언젠간 반드시 크나큰 위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필자는 평소 생각 없이 아가리를 털고 다니다보니, 그렇게 많이 데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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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철학자들과 나는 근본적인 세계관이 다르니까, 조금씩 다른 주장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모두 비슷한 직감을 가진 인간으로서 추구하는 행위는 대개 비슷한 편이지만, 행위의 정당성에 대한 근거가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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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제외를 전제했을 때,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다를 바 없는 무의미한 원자의 집합체에 불과한 것이 바로 인간이다. 죽은 사람도 물질이고, 살아있는 사람도 물질이다.
따라서 유일한 의미 부여의 근거인 개체의 느낌[궁극 목적(모든 종류의 쾌락)]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살인까지도 때론 최선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오해하지말라, 나 역시 살인을 혐오한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살인이 아주 제한적으로는 허용될 필요가 있겠더라는 말이다.)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의 사형 집행은, 궁극 목적을 위한 수단적 살인의 예시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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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철학자들을 존경한다.
그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선구자들이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비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멍청해서라기보단, 그들과 내가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배경 지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석기시대에 태어났더라면, 평생을 내가 사는 지구가 둥근지도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2022년 현 시대의 인류도, 아직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오늘날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심오하고 광활한 세상이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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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사람만의 고유한 관점에서, 분명 유의미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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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사람은 뭘 해도 나쁘게만 보이는 것 같다.
[2022 11 25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실수를 하더라도 귀엽게 보이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