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의 철학자들의 주장을 보며, 비판이나 관련된 발상 등의 상념에 잠기는 것은 시험 공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험 문제는 나의 사상을 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시간을 빼앗는다. 나의 파고드는 성향은 시험 공부에 있어서 심각한 장애물이 된다.
근데, 분명히 이러한 성향은 나의 본질적인 성품에 매우 훌륭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말이 안 된다. 좋은 것을 포기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학교 생활기록부와 별개로, 나는 따로 활동한 것이 많다. 하루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글을 쓰는 데 소비한 적도 많고, 작곡과 같은 예술 공부를 한 시간도 많다. 그러나 이렇게 쌓아올린 나의 실질적 능력을 알아볼만한 입시 전형을 갖춘 대학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시험 성적 위주로만 본다. 현실적으로, 기술적으로 어쩔 수 없는건가.
언젠가 학교를 으깨버리고 학생들을 학원으로 보낼 것이다.
실용적 능력에 대해 정확한 평가가 불가능한 시험지는 갈가리 찢어 쓰레기통에 처박을 것이다.
교육의 근본적 목적을 생각한다면 나의 일탈은 당연하다.
국가가 우리의 일탈을 막는다면, 이는 멈추지 않는 출혈이 되어 끔찍한 손해를 초래할 것이다.
[2021. 9. 28. 수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대학을 위해서. 그렇다면 대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배움을 위해서; 근본 목적은 배움이었구나. 그렇다면 내가 듣는 수업이 대학을 위한 수업이 아니더라도, 배움을 준다면 근본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었구나!(물론 좋은 대학을 가면 더 많은 배움을 얻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사회가 기형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학교의 형식적이고 불필요한 강요에 흔들리기보단 근본 목적에 대해 더욱 중요한 무언가를 위해 시간을 더 많이 보낼 것이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DAW 공부를 할 수도 있다. (근본을 추구하는 내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자퇴와 같이 내 신념만을 내세우며 살지는 않는다. 일단은 사회에서 살아남아야지만, 언젠가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졸업장까지만 받는 선에서 그저 약간 불성실한 성적으로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수업은 종종 듣곤 하지만, 깨달음 이외의 시험을 위한 과도한 암기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중등교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교사라는 틀 안에서 나름대로의 노력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교육 체계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사람은 도덕적 사고력이 없거나, 도덕적 책임감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일의 가치에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회에 딱히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은 일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고, 세금을 갉아먹는 안정적인 직업이 줄 행복에 눈이 먼 사람들이다. 나는 중등교사가 되는 것보다 더 유익한 일을 할 자신이 있다. / 공격적으로 말한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영웅이 되기를 강요해선 안 되겠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너무나도 험난하다면,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을 악으로 규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