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세상이므로 남을 위한다는 것도 결국은 자신을 위하는 것. 사람들은 남을 돕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기보단, 남을 도와 보람을 느끼는 데 의미를 둔다. 그래서 돕는 것은 효과적이라기보단, 정신적인 만족을 위한 형식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남의 손길보다 우선적으로 약자의 권리는 약자 자신이 직접 수호해야 하는 것이다. 얼핏 보면 완벽해보이는 현대 사회에선 자신의 권리에 무관심하더라도 여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타인은 나의 입장을 파악하지 못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식견으로만 나의 상태를 지레짐작한다. 물론 짐작이라도 해준다면 고마운 일이다. 대부분이 나에게 무관심하다. 심지어 그들에게 나의 입장을 설명해주더라도, 나를 도왔을 때 그들이 얻을 보람보다 그들이 나를 돕기 위해 써야할 비용이 더 크다면 그들은 내게 짜증을 낼 것이다. (사람들은 분리되어있다. 내가 아픈 것을 남이 그대로 느끼지는 못한다. 간접적인 감각으로 공감할 뿐이다.) (개인의 공감조차 얻지 못하는 벌레나 야생동물 등은 훨씬 소중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벌레의 입장에서 인간은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피해를 준다면 언젠가 외계 벌레와의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2021. 10. 4. 심지어 가까운 가족, 친구마저도 근본은 분리된 남이라는 점 잊지 말아야 한다. 분명히 언젠가는 입장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 땐 신체를 초월한 자신의 영혼을 따르라. // 영혼의 바람을 향한 정방향을 포기하여 타인과 유의미한 협력을 할 수 있다면 더 빠른 이동이 가능해지므로, 때로는 타인과의 강제적인 일치를 견뎌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보통은 고불고불한 길이다. 그러나 목적지가 다르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2021. 10. 7. 일치에 완전히 순응하여 꿈을 잃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이는 사회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사회의 요구에 맞춰 때로는 몸을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될 것이다. 시스템에 명백하게 낭비가 있다면 귀찮다고 순응하지말고, 이를 없앨 방법을 항상 매우 심각하게 궁리해야한다. 정방향에 가까울수록 종속에 의한 증속의 효율은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내 입장에선 이게 맞다고, 이렇게 안 하면 공격할거라고 말을 해야 한다.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직접 지켜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연대가 맺어지는 것은 존중을 기반으로 하는데, 그러한 존중을 위해선 나한테도 유의미한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한다. 진정한 평등을 위해선 형식적인 배려를 넘어선 힘의 고른 균형이 필수적이다. 힘의 차이가 심할 땐 맛있는 걸 두고 한 쪽이 일방적으로 고개를 숙여야하지만, 힘이 비슷할 땐 싸우면 서로가 자멸하므로 맛있는 것을 반으로 나누어 타협하는 경우가 일반적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치에 무관심하다면, 정치인은 우리를 위한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각각의 개인들의 입장에서 부여되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인권은 신에 의한 절대적 가치를 얻지 못하는, 인간에 의한 상대적 착각에서 비롯된 원칙에 불과한 것이다. 다양한 수단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에서, 그 많은 수단들 중 하나로 쓰일 간편한 규칙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그나마 완전에 가까울 인권을 얻기 위해 힘의 활용과 균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2021. 9. 21. 힘을 협력에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서로 사랑은 못 하더라도, 도움은 함께할 이유가 될테니까. (2021. 10. 4. 추가적인 가치도 창출할 수 있으니까.)]

Posted by 문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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