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은 좁기에 종종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나도 잘못된 선택을 한다. 말실수도 많이 했었고. 따라서 남의 말을 잘 들어볼 필요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내 성깔이 여간 사나운 것이 아니면서도, 내가 사람들에게 욕을 섞는 등 심하게 비난한 일은 거의 없다. 그나마 이해되어 얻는 것이 있을 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방어적인 복어나 고슴도치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부풀려진 말에 진심이 가려진다.
물론 나도 자존심이 있기에 당장은 나와 반대되는 주장에 반발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나도 모르게 나를 공격하던 사람들의 논리를 수용하고 그 때의 나와 비슷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적당히 비판한다. (기본적으로 많은 수단을 경계하며 바라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근거는 그들의 것이 떠오르더라)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지지는 않도록 조심하자. 내 말이 틀릴 수도 있다. 내 말이 나중의 부끄러운 자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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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가 낫다. 공장에서 만드니까 인건비와 임대료가 저렴해 가격도 싸고, 맛도 다른 커피들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상가에서 파는 것보다 부족한 점이라면 뭐 크림이 없다는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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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 내게 글 잘 쓰는 법을 물어본 일이 있었다(그분께 노출됐던 곳에서는 이 글에서처럼 주절주절 떠들기보다는 정리하여 주장하는 글들이 많았다.). 뭐, 내가 꽤 글 좀 멋있게 휘날리긴 하지.
글을 쓰는 데에 있어 기본적으로 좋은 틀은 존재할 수 있겠지만. 나는 형식을 생각해가며 글을 쓰지 않는다. 세상에 완벽한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조금 괴상하더라도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 어떻게하냐면, 일단 머리 속에서 맴도는 아이디어들을 싹다 짧은 문장으로 휘갈기고, 대충 그것들을 묶는다. 그 다음 내 글을 독자의 입장에서 읽어보는 등 계속해서 점검한다. 몇 시간이고 점검한다. 그러다보면 아까와는 다른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아무튼 계속계속 만족할때까지 살펴본다. 그리고 비로소 내 글을 게시한다. 근데, 그러고도 나중에는 흠이 보이더라. 흠을 정하는 기준이 명확하게 존재하진 않지만, 뭔가 느낌이 쎄한 문장이 있다. [주절거림의 경우, 문장 하나하나를 그렇게 가꾸지는 않는다.(문맥상의 오류는 수정하는 편이지만) 그냥 최대한 많은 생각을 대충이라도 정리해두는 게 목적인 글이다. 사소한 주제나 짧은 생각에서 쓰여진 글을 하나의 글로 인정하기는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글을 도배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글의 길이와는 별개로 질이 떨어지기도 한다. 아니, 진짜로 정성껏 글 하나 쓰려면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꼬박 지새워야 한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정말 많은 정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핑계처럼 보이겠지만 뭐 하나만을 집요하게 집중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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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비싸다고 여기는 것. 예를 들면 아이폰?은 사실 비싸지 않다.
아이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재료를 구해줄 사람, 부품들을 만들어줄 각각의 사람, 생산 시설을 세워줄 노동자 등 무수히 많은 사람이 필요한 일인데 옛날 사람이 설계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봤자 감히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마 그들이 아이폰을 만드려면 국가 하나가 전념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산업화 덕분에 쓸만한 물건들을 싸게 살 수 있다. 감사하자. 먼 옛날의 평민이 지금처럼 (나름)풍요로운 삶을 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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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어렴풋이 있던 내 생각을 확고하게 만들어준다. 다만 그 과정에서 조금 수정된다. (나만의 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알게 모르게 내 주위 풍향의 영향을 [역량 형량: 라임이다. 난 이런 걸 글에 삽입하는 걸 좋아한다.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활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글들 중엔 뭔가 산문이면서도 시처럼 쓰여진 글이 많다. 생각나는대로 막 지껄여서 죄송합니다. 아, 그리고 그들만의 언어에서만 허용되는 라임은 번역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받는 것이죠!)
[이것도 누군가에게서 들은 말인지 아니면 예전에 혼자 떠올린 적이 있었던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버리기는 아까워 여기에다가 메모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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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유튜버는 돈을 참 잘 번다. 근데 그들은 가시밭길에 있다. 조금이라도 질리거나 실망감을 주는 순간 시청자들은 당연한 듯이 그들에게 무관심해진다.
직업이 안정적으로 변하려면 영상이 허술해질 때를 대비하여 유튜버 자기 자신에 대한 광적인 열광이 있어야 한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한 환경이 구성되면 내 창작물의 수준이 어떻든 사람들은 관심을 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창작물의 완성도에 소홀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왕 좋은 자리에 섰으면 공익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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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서 글을 쓸 때 외래어나, 인터넷상에서만 쓰이는 천한? 용어를 자제한다. 누가 강제한 적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한다. 글로 인정받지 못 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인 거 같다. 아무튼 국어사전에 없는 표현이라면 불편해서, 계속 유사어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미련한 행동이다. 그냥 앞으로는 내 w대로 할 것이다. (근데 티스토리 운영정책 눈치도 보인다. 에라이. 내가 바뀌어야 사회가 바뀌는지 사회가 바뀌어야 내가 바뀌는지. 그래서 블로그를 이사할까도 생각하고 있다. 밉보여 정지먹거나 서버가 터지는 상황을 우려하여 백업도 몇 달에 한번씩 하고 있고,, 내가 이렇게 걱정이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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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든 남자든 그 성에 걸맞는 형상을 갖추고 있다면 외모가 상당히 보정된다. 그러니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잘 꾸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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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보기와는 달리 걷기에는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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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대로 되는건데 한계를 정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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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생이면 수업시간이 남아선 안 된다. (남은 시간에 내 썰이라도 풀자.) (결코 학생들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않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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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원칙 같은 것을 세운 다음에는, 그것이 요구하는 세세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쌓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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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는 동료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이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내 주장은 급진적이라서 함부로 바꿀 수 없겠지만) 순수하게 어떤 정책의 효율성만을 따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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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생각들도 다 글로 남기려다보면 좋은 점이 내 논리의 구멍을 메우게 되고, 내 논리가 기억에 더욱 잘 남고, 기억나지 않더라도 다시 찾아올 수 있고, 하여간 내가 좋은 말을 즉석으로도 잘 하게 되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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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이라는 영단어가 있다면 똑같은 것을 지칭하는 물이라는 단어가 있다. 같은 것을 보기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일이다.
만약 당신이 이게 뭐 어쩌라고?라고 묻는다면, 딱히 말이 없다. 난 이런 사실을 어떻게든 분석해서 교훈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당신은 이런 걸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철학자들은 각자 다른 표현을 쓰면서도, 그 근본은 결국 비슷한 것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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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신조어는 한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는지? 난 이게 한자인 줄 알았다. ㅋㅋ 반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여서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것이랬다. 일단 조선시대 양반처럼 한자를 배우고 쓰는 사람이 거의 멸종한 것도 있겠고... 아무튼 말에는 정해진 형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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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가 그냥 커피보다 낫다
작곡의 근본
좀 천한 말 쓰는 게 뭐가 잘못됐지?
여자의 모양 남자의 모양이 갖춰지면 외모가 떡상한다
평화로운 풀숲은 보기와는 달리 험난하다
하는대로 되는건데 한계를 정하지 말라
수업시간이 남아선 안 된다 (내 썰이라도 풀자)
원칙을 정해두었다면 그 다음은 그로부터 비롯되는 기술을 쌓는 것이다.
정치는 틀린것을 자유롭게 지적해야한다
글을 쓰니까 내용이 기억에 잘 남게되고 말도 잘하게 된다.
보는 것이 같으므로 언젠가는 그것을 지칭하는 표현이 생겨난다. 이 글의 글 주제들을 메모해둔 것이다.(지운 것도 있다)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오를때마다 잊어 먹기 전에 이렇게 적어두고 짧은 문장을 보면서 그물처럼 연결되어 딸려오는 자세한 부분들을 회상하고 전개한다. {작곡의 근본 이거는 여기다가 안 썼는데 나중에 쓰게될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 블로그에서 지워진 몇 글들은 대부분 블로그의 주제에 맞지 않는 글이라서 삭제된 글이다. 가장 먼저 내가 만든 암호를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게다가 그 글에는 사진을 올려두었기에, 글 백업프로그램이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게임의 강좌를 적으려다가 삭제한 적도 있고(이것도 마찬가지로 사진이 들어갔다.) 아 모르겠다. 아무튼 블로그는 답답한 점이 많다. 언젠가 이 곳도 떠나갈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게 영원할 것 같으면서도 영원하지 않더라고요. 친구든, 가족이든, 취미든, 몇 년만 지나도 아주아주 성질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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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꼽다고해서 너무 괴롭힐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는 지금처럼 높이(근데 나는 높은 벽도 싫다. 내가 나태해서 투덜거리는걸까. 아무튼 나는 광활한 탐험지가 좋지, 이제는 지도가 다 그려졌고 조신하게 앉아서 돋보기만 들여다봐야하는 세상은 싫다.) 쌓인 재료가 없었다. 이해해주자.
먼 옛날의 조잡한 기술은 조금씩 발전해가며 현대에는 매우 정교해졌다. 그리고 그 정교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부터 축적해온 아주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철학사를 알아두는 것이 나쁠 것은 없는 게 과거의 낡은 세계관과 그들만의 언어를 파악해두는게 근대의 철학을 이해하는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흥미롭지 않지만. 나는 번쩍번쩍한 위인들의 말보다는 내 주변인들에게서의 궁리가 더욱 와닿는다. (2022 05 14 주변인들에게서의 궁리 : 조선시대에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남아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아닌, 오늘날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실용적인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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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업이 여러 개가 될 것 같다. 작곡가, 게임기획자, 그림쟁이(이건 재능이 제로.. 연습을 거의 안 한 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 유튜버, 방송인, 주식투자자, 정치인 등. 많은 일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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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선택 폭을 넓히고 싶다. 쓸 수 있는 단어가 많아지면 많은 것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국어사전을 열심히 보면서, 일단 잘 기억나지 않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도 하고, 내가 질릴만큼 쓴 표현들을 대체할 유사어들을 찾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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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을 까더라도 비판 받을 만한 정책 등에 집중해야지, 사소한 말실수나 그런걸로만 정치인을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다지 그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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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아니라면 재앙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환경이 급변했다고 생각해보자. 내가 받아들이는 의미와는 별개로 변화한 현실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친하던 누군가 죽더라도, 그와 헤어진 것일 뿐이다. 그냥 그가 사라진 것 뿐이다. 그와 더 이상 대화할 수 없을 뿐이다. 죽는 모습을 상상하지 말고, 그냥 사라졌다고 생각하자. (지금 우리 집 개가 7년 정도를 살았고[벌써? 도대체 뭘 하며 시간을 보낸건지 모르겠다. 오늘마저도 더 하고싶다는 산책을 억지로 당겨서 데려왔다. 나도 나만의 이유가 있긴 했지만. 앞으로의 많지 않은 시간을 생각한다면, 나만의 이유가 얼마나 더 가치 있을지 궁금하긴하다.], 이 개의 수명은 12-15년이라고 한다. 솔직히 불안한 마음에 지껄이기 시작한 글이다.) (개를 놀아주곤 한다. 근데 내가 그렇게 노는 것을 즐긴다기보단, 개의 즐거운 표정을 보는 것이 흡족하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의료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든 언젠가는 사고가 날 수 있으니 나 또한 죽을 것이며, 사회가 내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내게 어떤 전과가 남든 심연의 시간이 지나고나면 모두에게 잊혀질 것이며, 내가 어떤 것을 성취하든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무서울만큼 아쉽다. 현실이 이런데 어쩌라고.
그래서 그냥 즐기기만하자는 말이다. 가족이 죽어도, 뭐 적당히 살다 죽었구나. 너무 감성적으로 슬퍼하지는 않고 싶다. 가볍고 무뚝뚝하게 받아들이고싶다. 나는 인간으로 살아가지만, 괴로운 것까지 인간답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이럴 때만 유체이탈을 하자는 말이다. 그게 정말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할 때만 태양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면 되지 않을까.
언젠가 내가 죽는다면, 그리고 그 때 나를 추모해주는 이가 있다면, 당신도 무의미하게 괴로워하지말고 유체이탈하세요! 내 죽음을 가소롭게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여느 역사책 속 인물을 보듯이 건서는 적당히 살다 죽었습니다. 이 정도로 받아들여주세요. 아무리 내가 가여운 모습을 보였다고 할지라도, 인간적인 감수성을 빼놓고 생각한다면 이 역시 우스운 일에 불과합니다. 다만 나를 그리워하지 않더라도, 내 그동안의 발자취에서 가치를 발견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 뿐인 인생,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면 서운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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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개는 어릴 때부터 사람 손을 타서 길러졌기에 부모에게 배운 것이 없습니다. 근데 어느 날부턴가는 배운 것도 없으면서 혼자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는지 안 하던 짓을 합니다. 그동안은 오줌을 쌀 때 한 쪽 다리를 들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들기 시작하고, 또 언젠가부터는 똥을 싸고 뒷다리로 사방을 흙으로 덮고(근데 결코 똥을 덮는 일이 없습니다. 똥의 위치와는 관계없이 몇 걸음 이동하고 돌면서 발을 구르기에 제 신발 속으로 흙이 들어가곤 합니다.{2022 10 10 뒷발로 흙을 차는 행동은 똥을 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냄새를 퍼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또 산책로에 자라는 잡초 따위의 냄새를 킁킁 맡다가 조금씩 뜯어먹기도하고. 또 매일 밤에는 늑대 울음소리 섞인 듯한 짖음으로 귀신 쫒기를 합니다.
유전자에 각인되었다는 것이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동물이 좋습니다. 인간과 달리 족쇄 같은 생각들에 사로잡혀 솔직함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알려주지 않더라도, 나도 내가 느끼는 것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