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아닌 성적을 위한 공부
공부가 아닌 경쟁을 위한 시험
공부가 아닌 월급을 위한 수업

물론 그 과정에서 약간의 공부는 챙길 수 있겠지만, 근본적이지 못해 낭비가 심하다. 총을 쏠 때 적군을 보고 쏘는 것이 아니라, 대장이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만을 보고 어림짐작하여 총을 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해볼 수 있겠다. 적군을 섬멸하기 위한 발사가 아닌, 대장의 지시를 따르기 위한 발사이므로 당연히 적에게 맞는 총알은 조금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낭비이다. 수업을 아무리 들어도, 배운 내용들 중 실용적인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쪽에 총을 쏘라!! 저쪽의 범위가 넓어서 헷갈린다. 저 방향 아무데나 쐈다. 적군이 어디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명령을 따랐기에, 장군께 칭찬받았다.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라!! 시험을 위해서라면 닥치는대로 외웠다. 내 실질적인 능력이 진짜로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점수를 잘 받았기에, 부모님께 칭찬받았다.

실제 예를 들자면 역사 수업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깊이 생각할 시간만으로도 빠듯할텐데, 그럴 틈도 없이 세세하고 쓸데없는 것을 외우도록 강요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생활기록부 등을 통해 진정한 공부를 추구하겠다는, 그런 시도도 있었지만 더욱 왜곡된 평가가 되었다. 교내 대회는 형식적이었고, 진심을 잃고 그저 스펙 쌓기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 되었다. 경쟁 방식을 어떻게 바꾸든, 이러한 경쟁 상황에서 근본적인 공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 현실적으로 한정된 자원으로 학생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대할 수 없다.

학벌이 사람을 판단하니,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어째서 대학의 이름에만 국한될 수 있겠는가?

물론 좋은 대학이 좋은 수업을 하고, 성실한 학생을 뽑기에 일반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배출하기는 한다.
그러니까 차고 넘치는 지원자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살펴보지는 못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뽑는 게 안정적인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지나쳐서 쉽게 짜르지를 못 하니까... 지방대를 뽑는 것을 더욱 꺼리는 게 아닐까?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이런 편의만으로 이 상황을 합리화하기엔 부작용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경쟁에 미쳐서 청소년기의 금 같은 시간을 공부가 아닌 공부에 투자하도록 만들고 있지 않은가? 이 악습이 없어진다면 오히려 기업이 얻을 인재의 전체적인 질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대학명을 알지 못해야만 대학의 가치가 떨어져 유의미한 효과를 발휘한다.)

대학은 학생들의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공간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상표를 붙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기업이 능력이 부족한 사원을 쉽게 처분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 기업이 사원을 뽑을 때, 결코 대학명을 볼 수 없도록 강제해야한다. 오직 기업의 자체적인 시험으로만 능력을 평가하고 사람을 판단하여야한다.

훌륭한 개발자를 구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깃허브를
훌륭한 작곡가를 구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자작곡을

마침내 지금의 기형적인 교육은 근본적인 교육으로 교정될 것이다.
거품이 가득한 시험 점수의 중요성은 흔적 없이 무너질 것이고, 이제 선생들은 등수 나누기를 위한 수업이 아닌 학생의 능력을 위한 근본적 수업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성적에 예민한 사람이 없으니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하는 다양한 수행평가를 시도해볼 수도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지방대를 다니더라도, 고졸이더라도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적극적이고 근본적이고 능동적인 자기 개발이 가능해진다. 더이상 사회에 구속되지 않는다. 딱딱하게 굳은 기존의 배움보다 더 효율적인 길을 시도하고 찾아내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시험 점수와 같이 비교적 비실용적인 것을 토대로 하는 경쟁이 아니라, 실제 능력을 토대로 하는 경쟁을 해야 기술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Posted by 문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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