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필

겨울 속 이불 속

문건서 2021. 8. 6. 03:27

과거의 꾸지람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한 꾸지람은, 내가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 나의 잘못이기도 하고, 그에 비해 지나친 꾸지람이기도 하고, 혹은 작은 꾸지람인데도 나 혼자 크게 느낀 것일수도 있고, 어쨌든.

어쨌든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복부를 가격당하거나, 나이가 어리니 말을 무례하게한다는 핀잔을 듣거나, 제발 시끄럽게 질문하지 말고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받거나. 하는 일.

나의 수업에 왜 참여하지 않느냐는, 얼굴이 빨개진 선생들의 고함이나.

미처 적응하지 못했던 버스의 하차벨을 까먹고 버스를 멈춰세우려고한 것에 대한.
미리 눌렀어야지. 하는 얼굴 모를 어르신의 불평이나.

그것들은 인생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지는 않는. 그런 그리 크지 않은 공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품격에 흠집이 가해지는 상황이라 그런건지 심각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하루종일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일생내내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보기 싫은 과거의 흉터가 되어 오늘처럼 괴로워하게되기도 하고,

결국 알 수 없는 복수심을 가지기도 하고, 열등감을 가지기도 한다. 즉 불안이 증폭된다.

이는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사랑이란. 뜬금없지만 사랑이란.
나는 꿈을 꾼다.
어떤 실수라고할지라도 나를 보듬어주는 사랑.
그러한 맹목적인, 불합리한 사랑이 있었다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내가 그런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것 같진 않다.
나 또한 남에게 지나친 공격을 가하기도 하므로, 내게 증오를 가진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랑 받을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내게 무관심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모두가 개인의 세상에 갇혀있노니,
이를 이용해야하지만,
이는 인지한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작게나마 집이 있다.
가족과, 가끔 보는 한두명 정도의 친구와, 인터넷상에서의 작은 연대.
이들은 내가 이러한 괴로운 집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꺼이 진통제가 되어준다.

과거의 상처에 따가운 소독약을 무덤덤하게 바르는 실리주의자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적어도 내 주위의 얇은 생명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부끄러워서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늘 사모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