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상황은 두렵지만 죽은 상황은 두렵지 않다.
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의미 없는 한탄이지만 말이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무언가를 하고 싶어 애달파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갈망보다는 쫓김에 가깝다. 너무 하고 싶어서 괴로운데, 그것을 참아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너무 괴로워서 피하고 싶은데, 그것을 참아야 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아주 드물게 원하는 바를 이루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기쁨만을, 이내 지겨움과 함께 무력감이 나타난다.
이상과 현실은 일치할 수 없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며, 어찌저찌 잘 헤쳐나가더라도 종말에는 죽음이라는 처절한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다. 결코 안도감을 얻을 수 없다. 어떻게든 세상에서 살아남아 내 조상이 된 사람들이 추구해오던 생존은, 행복을 목적한다기보단 고통을 피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었다. 밥을 먹는 것이 행복을 위한 것인줄 알지만 사실 그것은 배고픔이 괴로워서였고, 이성과 사귀는 것이 행복을 위한 것인줄 알지만 사실 그것은 외로움이 괴로워서였다. 쉴 틈이 없다. 나는 이런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이유에서 욕구와 거리를 두려는 스님들마저도 매 시간마다 소변을 누어야 한다. 밥을 먹어야 한다. 추위를 피해야 한다. 숙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 아무리 노력해도 신경쓸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살아있는 동안은 누구도 인간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욕구로부터 고통받는다고 해서 욕구를 포기하는 것은 살아있는 한 부질없는 고집에 불과하다.
인간다운 착각을 배제하고나면, 사는 것은 끊임없는 투쟁으로 고통스럽게 보인다.(물론 항상 원하는 바를 쟁취하던 사람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겠지만, 그렇게 천명을 누린 사람은 역사적으로도 손에 꼽힌다.) 나는 아직 인간으로 남아 있기에 죽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지만, 내게 인간적인 시각이 사라진다면 고통 속에서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죽은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죽는 것은 나쁘지만, 죽은 것은 나쁘지 않다! 이 차이는 매우매우 중요하다.) 죽고나면 걱정에 괴로울 일이 없으며, 질투심에 괴로울 일이 없으며, 질병에 괴로울 일이 없으며, 이별에 괴로울 일이 없으며, 실패에 절망할 이유가 없다.
[나쁜 인생일지라도, 광활한 우주를 생각한다면 생명으로 살아간다는 건 매우 놀라운 경험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자체로 살아 남아야 할 이유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나는 이러한 인생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렵겠지만 내가 언제나 행복할 수 있도록 투쟁하며 살아갈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안타깝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을 친구로 여길 것이다. 내가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더라도, 나 자신을 고통 속에서만 살아가는 패배자로 취급하진 않을 것이다. 내가 패배자라면 모두가 패배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울해지면 그나마 얻을만한 발전도 포기하여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두 힘을 냅시다.
나는 인간다운 기쁨을 추구하면서도, 그 기쁨에 집착하며 되려 고통받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얻지 못할 것은 잊고, 그나마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