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詩)

만물의 어머니는 바쁘시다/어느 정도의 통제는 필요하다

문건서 2021. 5. 29. 12:45

낳아주신 어머니가 많이 바쁘신 것 같으니 우리끼리 빨래를 널고,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해야 해.

힘들고 외롭겠지만, 우리가 더욱 부둥켜 안고 협력할 수록 그런 건 잠잠해질거야.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말아줬으면. 유랑민이 아닌 개척자라고 생각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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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의 나는 줄노트가 싫었었습니다. 티 없이 새하얀 백지에 자유로운 낙서와 글을 끄적이고 싶었는데, 줄노트는 그런 일을 할 때 조금 걸기적거리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유빛의 종이를 무책임하게 집어들었던 것입니다. 그 후 글씨는 통제되지 않았고 결국 순진하던 순백의 종이는 허리 굽은 돼지들에게 무참히 강간당한 몰골이 되었다고합니다. 나는 도무지 신원을 파악할 수 없는 이 싸늘한 주검에게 겸연쩍은 작별 인사를 고합니다. 그리고 유배 갔던 줄노트를 다시금 모셔옵니다.

 제가 경솔했습니다. 내게 자유가 온다면 마냥 최고의 효율을 뽑아낼 것이라 자만하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 듯 합니다. 다만 감히 부탁드리자면, 진한 선은 연하게 만들어주셨으면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색다른 시도에 열의를 보이곤 하는데 당신의 지나친 고집은 기발한 활동에 방해를 가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