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 중/문득 든 생각

주절거림 (조금 고급진) 2021/5/24

문건서 2021. 5. 24. 21:16

요즘의 깔끔한 책들에는 끈으로 된 책갈피가 내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나 나는 책을 읽다보면 이 끈을 어디다가 두어야 할 지 어지러울 때가 잦습니다.
혹시 책이 닫기는 상황이 올까 지금 읽고 있는 페이지로 끈을 옮겨야 할 지, 아니면 더 전진할 것이므로 뒷페이지에 묻어두어야 할 지, 글을 읽을 생각보다는 잡다한 방해가 주위를 맴돕니다. 차라리 끈을 잘라버리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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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켜져 있다면, 무슨 일을 하든 거의 하루 종일 음악을 틀어둡니다. 가끔은 곡에 매료되어 해야할 일이 정신 사나워지기도 하지만, 심심한 것이 괴로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말 집중해야 할 긴박한 상황에는 음악을 끕니다.)
그러나 재생 목록에 담아두지 않는 곡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작곡입니다. 왜냐하면 곡 자체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뒤늦게 발굴되는 사소한 결함들이 너무나도 커다랗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 이 부분은 조금 박자가 맞지 않는 것 같네. 아, 여기는 드럼을 이렇게 찍었어야했는데.. 이렇게 곡을 곡으로써 즐기지 못하게 됩니다. 덧붙여 내가 만든 것이 과연 곡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만드는 과정에서 귀가 찢어지도록 반복해서 듣기에 생기는 지루함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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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이 너무 밝습니다. 그래서 선글라스를 쓰곤 합니다. 다만 이것을 쓰고 나면, 남들은 내 눈빛을 보지 못합니다. (사실 머리에 뭘 걸치는 것이 불편해 실제로 쓰는 일은 거의 없고,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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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글자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표정, 목소리 톤, 말투 등에서 여러가지 신호를 주기에 이 또한 활용할 줄 아는 것이, 호소력을 기르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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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가치는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의 양에 근거합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떄는 백만원이라는 돈이 크게 보였었지만, 지금 보니 백만원이라는 돈은 천원짜리 빵 천개. 이십만원짜리 중고폰 다섯개, 어라. 적은 돈은 아니군요. 그렇지만 공장 하나에서 엄청나게 제조되는 제품의 양에 비해서는 별 거 아닌 돈이 맞는 것 같습니다. 노동자들도 딱 자기가 맡은 만큼의 임금을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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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비트코인이 유행입니다. 그와 관련해 기술적인 문제는 내가 왈가왈부 할 수 없으니 넘어가고, 나는 화폐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보고자 합니다.
화폐는 신용입니다. 오늘날의 쓸모없어보이는 종이쪼가리가 돈으로 역할하는 이유는, 이것을 다른 물건과 교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국가에서 세금 등으로 요구하는 것이 돈이므로... 국가에 의해 가치가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안정적인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돈을 거래에 이용하며 편안함을 얻습니다.
현재의 비트코인에도 비슷한 가치가 존재합니다. 근데 조금 기형적입니다. 비트코인을 돈으로 사고 팔기만 하지 비트코인과 물건을 교환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유는 아마도 투기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합법적 도박장 비트코인의 가치가 안정적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비트코인을 상대로 가격표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극단적으로 오늘의 사천만원의 비트코인이 내일은 이천만원의 비트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비트코인의 가치를 설명할 때 다른 화폐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천원을 음료수 한 캔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0.00002 비트코인이 보이자마자 음료수 한 캔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트코인이 일반적인 가격을 형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탈중앙화된 화폐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마도)
다만 비트코인이 아주 망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도박의 재미가 꽤나 크다고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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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수업을 잘 듣지 않았었습니다. 왜냐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매번 엎드려있기엔 괴로워서, 책을 빌려 수업시간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책은 아닙니다. (사실 만화책이라도 문제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혼났습니다. 자는 것은 묵인하면서, 책 읽는 것은 안 된답니다. 선생께서 도대체 왜 나의 수업을 듣지 않느냐고 묻기에, 수업이 재미가 없어서 그랬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실수했습니다. 상처 받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이런 불합리한 지적이 있더라도, 일단은 상대방의 명령에 수긍하는 척 하며 상황을 어벌쩡 넘기고 봅니다. 맞서 싸우며 상대방의 감정적 거부감을 증폭시킬바에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분위기를 보고 적당한 기회가 찾아오면 그 순간을 붙잡아 합법적으로 합의를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지켜봐도 방법이 없다면, 그 땐 칼을 갈고 용기를 내봐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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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다양한 발상을 만들어줍니다.
책이 가르치려는 논점이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다루는 사례들로부터 뻗어나오는 생각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단어 하나만 보고도 기억이 되살아날 때도 있습니다(그래서 쓰고 싶은 주제들이 갑자기 많이 떠오를 땐 제목을 대충 지어 마구 메모해둡니다. 주절거림 대부분이 그렇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책 한 페이지를 한참동안 펴두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책을 읽다가 딴 생각으로 빠져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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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릴 때(유치원~초등학교저학년)의 기억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동물 같았습니다. 정말 단순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분명하고, 이제 와서 생각하면 정말 미개했다고 생각합니다. 주관이 없었고, 그냥 대충 주변에서 들은 것대로만 판단했습니다. 그런데도 뭐가 안 좋다고 하면 그게 왜 좋지 않은지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감정의 경우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뭐, 내가 뇌과학자는 아니므로 틀린 말일 수도 있긴 하겠지만요. 내가 느낀 것이 그랬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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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 과제에서 모둠원이 성실히 참여하지 않아 점수를 낮게 받는다면, 그 사람만을 속으로 욕할 것만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떤 노력을 했으면 더 좋았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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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아무런 꿈 없이 푹 잠들어있다가, 갑작스런 알람 소리에 일어났습니다. 뇌가 비워진 상태에서 일어난 일은 오랜만입니다. 원래는 일어날 때 즈음 맥락 없는 개꿈을 꾸다가 일어납니다.
습관적으로 유튜브를 키고 뉴스를 보았는데, 보통 이것은 가치를 따집니다. 좋은 소식, 나쁜 소식. 그러나 나의 머리 속은 거의 완전히 비워져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의미를 무상하게 느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넓은 세상에서 인간이 되었는지.. 동물 한 마리로 살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죽으나 사나, 순간적으로 죽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우울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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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앞에 사람이 있다면, 티 안나게 속력을 내어 그 사람을 추월합니다. 우월감을 느끼기 위함은 아니고, 앞에 사람이 있으면 이 사람이 부담스러워 내 마음가는대로 걷지를 못 합니다(그 사람이 나를 인지하는 상황도 부담스럽고, 특히 혹시라도 나란히 걷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속도를 내거나, 아니면 아예 이 사람이 멀리 가버릴 때까지 잠깐 기다리다 걷습니다.
다만 상대방이 지나치게 느리더라도 무엇보다도 앞서가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인입니다. 정말 걷는 것이 힘겨워보이셨는데, 젊은 내가 이분을 가볍게 넘어가버리면 혹시라도 그들 자신의 늙은 몸이 초라해보일까봐 걱정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뒤에서 기다리기는 답답한 노릇이라서, 결국 이들을 추월했습니다. 죄송해요. 세상을 어쩔 수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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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나 양손들 중 잃어야 하는 것을 하나 선택해야한다면,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혀는 상징적인 것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조금 뒤에 깨달았습니다. 혀 이외에도 말을 할 수 있는 수단으로 키보드와 연필도 있는데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손가락을 남기는 것이 더 나을테죠. (또 제가 음식을 아주 즐기지는 않으니까요. 맛보고 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더라도 영양분만 있다면 견딜만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