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살아갑니다
무얼하라 정해진 바가 없는 세상에서 의미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당장 눈 앞의 상황만을 보고, 듣고
그러나 망막한 우주를 생각한다면 의미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렇게나 고요한 세상에서, 어째서 나는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기쁜 이야기, 슬픈 이야기, 더러운 이야기
어째서 내가 사회에 있는 것이고, 어째서 내가 감정을 겪는 것이며, 어째서 내게 가족과 친구가 있는 것이고, 어째서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고, 어째서 내게 도구가 있는 것이고, 어째서 내게 돈이 있는 것인지. 아무튼, 좋든 싫든 경이로운 의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순수한 의미입니다. 순수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입니다. 이곳에서는 나 또한 규범의 풍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회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드릴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학교가 없더라도 공부를 할 수 있으며, 기댈법한 멋있는 기업에 취직하지 않더라도 직접 기발하게 창업하여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중요해보이는 어떤 것이 없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어떻게든 근본을 파악하고자합니다.
무의미한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입니다.
사회의 시선이 만드는 집착. 불편함을 야기한다면 가족과의 연락을 완전히 끊고 살 수도 있을 것이며, 이렇게 살아도 행복하겠다 싶은 상황엔 백수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런다고 식겁하지마세요. 근본대로 흘러가게 되어있으니까요. 제가 충분히 생각했다면 틀리지 않습니다. 식겁하는 당신들의 직감적이거나 전통적인, 축약적인 판단은 현실을 직접적으로 설명해주지않습니다. 화가 난다는 직감에 의존하여 사람을 때린다면, 당신은 감옥에 갈 것입니다. 형식적인 예의범절을 강요하여 사람을 피곤하게한다면, 당신은 왕따가 될 것입니다. 거듭말하지만 세상의 결국은 근본이 인정하는 방향대로 흘러갑니다. 당연한 것 같던 지상파 방송이 저물어가며 유튜브가 번영하듯이, 고정 되어야 할 것 같던 중세 한글의 규칙마저도 편의에 맞춰 자연스래 희석되고 변화했듯이.
내 말대로라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 있어 정해진 정답이 없기에 인생은 불안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의 신앙적 의미에만 뜻을 두며 살아왔으니 잊고 있었던 것 뿐입니다.
그러나 불쾌감만을 주려는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리는 우리가 더욱 정당한 착각에 빠져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이지만, 이를 받아들이십시오. 어쩔 수 없네요. 그게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덧붙이자면 인간의 체질도 고정된 바가 없습니다. 어떤 가치를 중점적으로 바라볼지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