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필

나의 인생사 (0~13살까지)

문건서 2021. 2. 1. 00:28

글에서의 내 말투는, 모두 경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글을 읽었는지, 그 글이 어떤 서체를 채용했는지에 따라 내 글 또한 조금 달라집니다.

사소한 경험들이 쌓여 나를 만듭니다. 그래서 아마 나를 설명할 때, 나를 이해할 때 가장 납득하기 쉬울 설명은 아마도 인생사일 것입니다.

언젠가 내가 남들에게 회고할 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노인이 되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지금도 나는 많은 기억을 잊은 것으로 보아, 내 인생사에 대한 기억은 지금이라도 기록해두는 게 남는 것이 많을 듯 합니다.

부끄럽다면 부끄러울 기억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딘가를 가린다면, 언젠가 그 가면과 연관되는 중요한 것들을 숨겨야 할 것입니다. 이해의 흐름이 끊길 것이고, 오히려 모순되는 모습으로 의구심을 만드는 것이 나의 추함을 과도하게 증폭시킬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최대한 모든 것을 공개했을 때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모습이고, 그래서 내가 아무리 좋지 않은 인생을 살았을지라도 우리들은 그것을 나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최대한 모든 것을 적고자 합니다. (이전에 쓰던 글들에 비해서,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지는 않겠습니다. 단순히 사실들을 나열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이 제 블로그의 글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생각의 배경을 알고 있다면, 아리송한 문장들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이유에서 누군가 제 블로그를 읽을 때, 가장 최초의 글부터 차례대로 읽는 것이 유리할 것입니다. 반복되거나 어떤 글로부터 파생되는 주제가 많습니다. 남이 관심있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만의 기록 같은 느낌도 살짝 있습니다.

2004년 10월 29일 ~ 2021년 초
16년 정도의 시간동안 어떻게 내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인상적이어서 남은 파편적인 기억들 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많은 것을 적기 위해, 단락을 나누어가며 설명하겠습니다. 나를 설명할 때 딱히 필요할 것 같지 않은 기억들도 언급하겠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저 무엇을 했다 정도로만 간단히 서술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떠오를 기억이 있을 것이므로, 이 글은 한동안 계속 수정해가며 작성하겠습니다. 아마도 세세한 것들을 배제하더라도 쓸 것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 (이 블로그에 나중에 마저 쓰겠다고 적어놓고 방치해둔 글이 몇 있습니다. 솔직히 흥미가 떨어져서 쓰기가 귀찮습니다. 이 블로그는 제 순간의 흥분을 내뿜고 보관하는 상자입니다. 그래도 이 글은 되도록 끝을 맺겠습니다.)


- 태어날 때부터 초등학교 시절 (솔직히 남은 기억이 적습니다.)

+2023 06 04 문건서는 2004년 10월 29일 경상북도 안동시 앙실로 11 안동병원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에서 자랐습니다. 안동에서의 추억은 전혀 없고, 사실상 나의 고향은 종로구입니다.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두 살 위의 형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간호사였지만 자식을 낳은 후 일을 그만둔 것으로 알고, 아버지는 프로그래머십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것으로 압니다(2023 06 04 우리 부모님은 서로 인터넷에서 만나 결혼까지 했다. 아빠가 ‘컴퓨터를 알려주겠다.’는 명목으로 엄마와 접촉했다고 들었다.). 다만 부모님의 과거에 대한 설명은 여기서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이분들의 성격이 어땠고, 내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연이 끊긴 것으로 알고, 외할아버지는 제가 매우 어릴 때 돌아가신 것으로 압니다. 따라서 할아버지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오직 할머니와 외할머니 둘만 존재합니다. 두 분 다 먼 지역에 사셔서 자주 뵙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아기 때 저는 잘 울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서랍 같은 걸 마구 뒤져보곤 했다고 합니다. 아마 호기심이 많은걸지도 모릅니다.
(2024 03 13: 2010년에 이사 가기 전에 살던 집에서) 집 밖 작은 공간에서 토끼를 키웠었습니다. 이름은 토순이였는데, 사람을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 방생한 것으로 아는데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사람 손을 떠났으니 죽었겠지만, 어릴 땐 죽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헤어짐이 크게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조금 아쉽긴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리더라도 성욕이라는 게 존재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유치원생 시절에는, 엄마 가슴을 만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젖을 먹으려던 것이 아니었고, 촉감이 좋았었나봅니다. 다만 브라를 낀 상태의 촉감을 선호했습니다. (아니면, 그냥 엄마 품에 안겨있는 것이 좋았었습니다.)
큰아버지가 중국집을 하십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학교를 나가지 않는 날은 점심 때마다 중국집에서 끼니를 해결했었습니다. 어머니가 가게를 도우셨었습니다. (다만 작년 즈음 간호사 일을 다시 시작하시며 서빙을 그만두셨습니다.) (큰집에 가는 것 또한 중학생 즈음부터 점점 빈도가 줄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가게가 끝날때까지 위층에 머물며 사촌들이 롤, 던파, 서든을 하던 것을 구경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롤에서 블츠, 니달리, 카르마가 기억에 남습니다. 친형이 사촌형의 동생이 시킨대로, 사촌형이 플래승급전중인 컴퓨터를 껐던 적이 있습니다. 인상적이네요.) [2023 02 07 초등학생 땐 토요일마다(학교를 가지 않는 경우 평일까지도) 큰아빠집에 가서, 2층에서 (2024 05 01 멍하니) TV를 보며 기다리다가, 장사가 끝나면 1층으로 내려와 점심(짜장면 or 짬뽕)을 먹었습니다.]

+2023 06 07 어릴 , 큰아빠집에서 둘째사촌형이 공연히 자꾸만 이름을 일부러 이상하게건석!” “건설!” 이러면서 놀리듯 불렀었는데, 귀찮아서 대답을 대충대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PSP와 닌텐도, 플레이스테이션2로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PSP에선 노란 풍선이 곰팡이 같은 것을 제거하는 로코로코와, 눈알처럼 생긴 사람들이 적과 싸우는 파타퐁이라는 게임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다만 두 게임 모두 어려운 단계는 무서워서 극 초반에 해당하는 부분만 플레이했었습니다. 또 닌텐도에선 동물의숲과, 포켓몬스터 펄기아/디아루가를 주로 했었습니다. 말랑말랑 두뇌교실, 미스터드릴러라는 게임들도 기억납니다. 아마 사촌에게서 받은 TT칩으로 플레이했습니다. 포켓몬스터에서 마스터볼999개가 가방에 가득 차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플스2는 딱히 중요하진 않지만 형과 마리오게임에서 전투를 했던 기억이 있어 적었습니다. 꽤 재밌게 했었습니다.
침대에서 잠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잘 시간이 되면 바닥에 이불 같은 것을 깔아 조금 부드럽게 만들고, 그 위에서 잤습니다. 마침 얘기하자면, 손과 발이 허전했습니다. 간지럽다고 느껴졌습니다. 정말 간지러운 것은 아니고, 그냥 어떤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발을 비볐었습니다. 가족들이 싫어했고 자다가 형에게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또 손 안쪽 손가락 바로 밑 살을 엄지손가락과 가운데손가락으로 힘을 합쳐 눌러 자극을 주곤 했었습니다. 때문에 초등학교 때 손에 살짝의 굳은살이 있었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정신적인 집착일 것입니다. 현재는 임시적인 치과 치료[2023 03 05 치수절단술(pulpotomy)]를 받은 한 쪽 어금니의 높이가 낮아, 치아에 혀를 자주 비비고 있습니다. 치아와 건강의 집착에 대한 이야기는 중학교 이후 단락에서 마저 설명하겠습니다.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2023 05 19 어릴 때, 앞니가 너무 간지러워서 혀로 계속 밀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는 앞니가 제법 튀어나온 편입니다.
형과 상상놀이를 했었었습니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인형 모양의 베개들에 이름을 붙여주고(2022 11 26 펑펑이, 파란고양이, 빨간고양이, 곰돌이, 미니미니, 황금돼지 등... 진심으로 베게를 사랑했습니다. / 베개 이외에도 탐아라{관세청 강아지 인형 : 형 꺼}, 참아라{폰 거치용 강아지 인형 : 내 꺼} 등 어릴 때부터 아끼던 인형들이 있습니다.), 상상 속 세계에서의 내 이름을 정했습니다(캥캥이었다가, 이후에 이름이 마음에 안들어서 멍멍이로 바꾸었던 것 같습니다.). 상상 속 나의 이미지는 개였습니다. 이 무렵 개를 한 마리 키우기 시작했는데 그 강아지의 모습을 나의 모습이라고 상상했었습니다. 나는 이 상상 속 세계에서 오늘은 무엇을 이뤄냈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뭐 pc방을 차려서 돈을 계속 어떻게 빨았다든지, 내 초능력으로 희귀한 광물들을 만들어 부자가 되었다든지, 부자가 된 돈으로 내가 감옥에 가서도 나만의 집을 꾸며 즐겁게 살았다든지, 아무튼요. 형과 나이를 먹으며 점점 얘기는 뜸해지고, 나는 조금 어려서그랬던지 대화를 더이상 안 하게 된 뒤에도 잠자리에 들면 그런 상상놀이를 하다가 잤습니다. 사실 방금 말한 상상의 예시도 그 때 나 혼자 쌓은 상상이에요. 형과 대화할 때의 상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런 상상놀이(어떤 걸 쌓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던)는 사춘기가 지난 후 더 재밌는 일에 묻혀 사라졌습니다. 중학교 위로 올라온 뒤론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때 이후부터는 잠들기 전 여자 생각이 대부분입니다.
유치원을 두 곳 다녔습니다. 추첨 같은 것을 탈락하고, 원래 다니던 유치원(2023 10 16 서울농학교)을 못 다니고 잠깐 다른 유치원(2023 10 16 옥인유치원)을 다녔다가, 다시 그곳에 당첨되어 그곳을 다닌 것으로 압니다. 멋진 곳입니다. 그러나 유치원에서의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다른 친구가 혼자 똥 닦는 것보고 대단하다고 했던 기억과, 선생보고 우유를 까달라고 했던 기억, 크리스마스 선물을 원하는 걸 받지 못했던 기억 정도가 전부입니다. 마지막 사연은 산타가 없는 것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어머니가 소원이 뭐냐고 물었었고, TV에서 광고하던 유희왕카드 장난감(2023 10 16 유희왕 듀얼디스크)을 빌었습니다만, 이후 닌텐도가 가지고 싶어 소원을 바꿨습니다. 어머니께서 살짝 당황하셨었습니다. 결국 닌텐도는 받지 못했고, (2023 10 16 서울농학교 유치원에 산타가 나타나서)먼저 빌던 쓸모없는 장난감을 받았었습니다.
엄마보고 작은 무선조종자동차를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납니다. (2022 11 22)바닥 한복판에 누워서 울고불고 졸랐었습니다. (2022 11 22 어머니께선) 결국 내 것을 사주며 (2022 11 22 동시에) 형 것까지 사주었습니다. (2022 11 22 그리고... 그 싸구려 자동차는 얼마 못 가 고장나고 말았습니다.)
졸면서 바나나를 먹었었습니다. 아버지가 찍어둔 영상을 보고 기억이 다시 났습니다. 아마도 지금쓰는 내용 말고도 제가 잊은 기억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 다시 언급이 되어야 떠올릴 기억이 많을 것입니다.
이사를 갔습니다. 부모님이 집을 샀습니다. 장판도 아직 안 깔린 새 집에서 형 옆에 엎드려 앞서 언급한 닌텐도와 PSP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큰아버지가 온다는 소식에 무서워서 게임기를 숨기려던 기억이 납니다. 이곳은 2층이었습니다. 이후 이 곳은 모르는 사람이 살다가, 이후 삼촌이 전세를 내어 살고 계십니다. 저희 가족은 이때부터 계속 1층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이 많이 가는 집입니다. 다만 언젠가 돈을 모아 부수고 새 집을 지을 생각입니다. 너무 오래된 건물입니다.

+2022 04 24 마당에서 고기를 먹었습니다. 먼저 다 먹고, 방에 들어갔습니다. 창 밖에는 가족들이 보였습니다. 장난을 쳤습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내 모습이, 영상처럼 보이도록(아마도 예전에 형이 했던 장난을 내가 따라했던 것 같습니다.)... 물구나무를 서는 등 과격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다가 자빠졌습니다. 순소대가 찢어져서 밤에 응급실로 갔습니다.

+2022 12 26 초등학교 저학년일 적, 형과 장난을 치다가 왼손을 다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방 책상에 올라가 있던 형이 점프해서 바닥으로 착지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앉아 있던 나의 왼손이 빠르게 떨어지는 그에게 깔렸습니다. 뼈가 부러지지는 않고 인대가 늘어났던 거 같은데, 꽤 오랫동안 반깁스를 했습니다. 깁스한 부분은 오랫동안 씻지 않으니, 정말 냄새가 지독했습니다.
유치원생 무렵엔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2g폰으로 하던 미니게임들 몇개가 기억납니다. 무슨 숲에서 놀던거랑 스토쿠였는데, 또 지금 스마트폰이랑은 거리가 먼 터치폰으로 개를 키우는 게임을 재미있게 했었습니다. 막 허들넘는거 연습해서 메달을 많이 따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2023 02 10 이건 '마이펫과 놀기'라는 게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마 1학년 때 옆자리 여자한테 반했었습니다. 근데 너무 어려서, 그런 감정이 뭔지는 잘 몰랐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동안 쭉 좋아했었지만, 아쉽게도 초등학교 때의 연애 경험은 없습니다. 그 시절 저는 뚱뚱했고, 매력 없게 생겼었습니다. 여자애들 빤히 쳐다봤었습니다만 눈 맞은 적이 없습니다. 슬픕니다. 아마 시선을 무시한 것이 아닐까싶습니다. 아무튼 그 때 분명히 발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운 적이 없었으므로, 혼자서 추측했습니다. 예쁜 여자가 옆에 있거나, 야한 상상을 하면 고추가 서는구나. 성장이 덜 되었음에도 여자가 신경쓰이는 건, 되게 신기한 본능입니다.

+2023 03 26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어떤 친구가 마술이랍시고 묘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손을 쫙 폈는데도 손바닥에 연필이 데롱데롱 매달려있는 것이었는데, 아마 풀을 붙인 것이 아니었을지 생각했습니다. (이 시기 부모님이 대통령 누구 뽑을건지-뽑았는지 얘기했던 기억도 있는 것으로 보아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12년 즈음의 일이 아니었을지 생각합니다.)
+2023 03 26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모자에 긴 팔처럼 장갑이 달려 있는 흰 북극곰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어떤 친구가 자꾸 잡아당겨서 하지말라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넥서스7이라는 화면이 넓은 안드로이드 기기를 받았었습니다(2023 06 04 정확히 2012년 12월 10일에). 아마 제가 가진 최초의 스마트기기입니다. 게임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인크래프트와, 팔라독 등.. 복돌로 게임을 깔았었습니다. 이외 무료 게임은 드래곤플라이트, 몬스터길들이기, 다함께차차차 등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기기는 이후 점점 느려졌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 작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그냥 보관만 하다가 이후 중고로 팔았습니다. [2023 02 10 이외에도 타이니팜(부모님 폰으로 예전부터 했던 게임), 우파루마운틴, 세븐나이츠, Pixel Gun 3D, 아오오니레전드(현 좀비고등학교) 등 다양한 게임을 재미있게 했었습니다.] [+2023 02 14 다함께쾅쾅쾅, 펠리컨폴, 에어펭귄, 레이디버그, Pou(포우), Sea Stars(바다별), Geometry Dash(지오메트리대쉬), 윈드러너, 쿠키런, Ski Safari, 앵그리버드, Bad Piggies(배드 피기스), 냥코 대전쟁, 디펜더(Droidhen에서 만든 게임), 지켜줘! 동물특공대(팔라독과 유사한 게임), BombSquad(Eric Froemling이 만든 게임), 클래시 오브 클랜, 클래시 로얄, Head Soccer(헤드사커), Nebulous.io, 헝그리 샤크 에볼루션, 마피아42 /// INSANIQUARIUM(광란의 수족관), Machinarium(머쉬나리움), 타이젬 바둑 /// 전쟁시대, 눈빛보내기, Super Smash Flash, Fireboy & Watergirl, GROW 시리즈(Nakayama Onkichi가 만든 게임), 쇼핑 카트 히어로 (Shopping Cart Hero)] [+2023 03 27 Wii 스포츠] [+2023 04 13 키즈짱 시장놀이] [+2023 06 03 테라리아(Terraria), BADLAND{FROGMIND에서 만든 게임}] [+2023 08 15 메탈슬러그] [+2023 08 31 드래곤빌리지] [+2023 09 15 도라에몽 수리점, 브롤스타즈] [+2023 12 15 프레디의 피자가게, Grand Theft Auto III, 나메코 재배 킷트] [+2024 02 19 동물철권(블러디로어4)] [+2024 03 13 스왐피는 어디에]

이마트에서 너무 목이 말라서 부모님께서 주운 노란 차 같은 것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엄청 시고 썼는데, 그것은 오줌을 버린 것이었습니다. 화장실로 달려가 혀를 열심히 닦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교 수업이 지루했습니다. 천의자리 덧셈이 너무나 하기 싫어 멍을 때리던 기억이 납니다. 받아쓰기에서 꺾어쓰기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내내 다니던 피아노학원에서 연습하는 것도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만.. 이 학원을 다닌 덕분에 피아노는 제게 귀중한 악기가 되었습니다.)

+2022 11 24 초등학교 저학년일 적, 학교 계단이 오르기 힘들어 잠시 네 발로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첫사랑이던 그녀는, 그런 제 모습이 귀엽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 제가 뒤룩뒤룩 살이 찌고 난 뒤에는, 그녀로부터 그런 칭찬은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23 05 04 초등학교 저학년 컴퓨터 시간에,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인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잡담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내 첫사랑도 있었고, 나는 관심이 받고 싶어서, 내 이름으로는 범죄자가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애는 내 말을 듣고는 “무서워...”라고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내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뉴스가 많이 뜹니다. ‘문건(에)서 어떤 것이 확인됐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 기사에서 간접적으로 범죄자가 나타나고는 했습니다.]

+2023 03 26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시사? 영어 과외를 받았었습니다. 여자 선생님 한 분에게 몇 년 배웠던 거 같은데, 먼 친척 어쩌구저쩌구... 대화했던 기억이 조금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나와 같은 문씨였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아무튼 과외를 완전히 그만두고 헤어질 때, 서로 조금 슬펐던 거 같습니다. 나중에(물론 이것도 초등학생 때)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고 반가워서 인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격이 내성적이었습니다. 고학년이 될 수록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쉬는시간 제자리에 앉아만 있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씩 개선되기는 했었지만 초등학교 때 친구는 사실상 없습니다.

+2023 03 26 같은 반 아이들과 몇 번 싸웠던 기억이 있습니다(심한 경우 약간의 폭력까지 써가며). 무슨 이유에서였는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의 저는 제법 감정적이었습니다.
아마 3학년 때 즈음 학교폭력 신고벨을 작동시켜 혼난 적이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그 버튼을 작동시켰다는 사실을 몰랐었습니다. 급식시간에 어떤 선생님께서 그 버튼을 누른 사람을 아느냐 떠보았지만 그런 걸 알 수 없었던 저는, 모른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떠본겁니다. 교실에서도 손을 들라 시켰던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몰랐었습니다. 이후 담임선생님이 배려하여 수영시간에 아이들을 차례대로 부르다가 저를 부르셨고, 저는 울며 아니라고 주장하였지만 선생님은 cctv를 보여주며 제가 작동시킨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4층 농구스포츠동아리가 끝나고 난 후 가는 길에 버튼 캡이 벗겨진 상자를 두고 '이게.. 아직도 있네'하며 토닥이며 지나갔던 영상입니다. 다만 선명하지 않아 내가 누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담임께서 저를 믿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후 교감선생님이 방송에서 익명의 저를 지적했었고 그것은 수치스러웠습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바람을 불렀고, 자살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성격은 지금은 조금 변질되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종종 공격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2022 11 22 억울함을 풀 곳이 없었던 나는, 그 때 '문건서는 무고하다.'는 취지의 현수막을 내건 채 투신자살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초등학생 시절 이것은 내게 가장 큰 괴로움을 주었던 사건 중 하나이다.]
성격이 내성적이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걱정하신 담임선생님이 추천하여, 부모님이 아이들 놀아주는 상담센터? 비스무리한 곳에 나를 데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큐테스트한다고 날 꼬드겼고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갔습니다. 상담사 두분께서는 저랑 보드게임같은걸로 놀아주셨고.. 또 운동기구같은걸로도 놀아주셨습니다. 방귀 뀌는 것이 부끄러워 허락을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엉덩이를 잘 닦을 (2022 10 14 줄을) 몰라 항문 근처에 땀이 나면 똥냄새가 나던 때도 기억납니다. 아이들이 내 옆에서 똥냄새난다고해서.. 되게 상처를 많이 받았었고 냄새를 숨기고자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후 물티슈로 엉덩이를 깊숙히 닦으며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엉덩이에 땀이 많습니다.
소유욕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형에게 개구리알이 주기 싫다고 버텼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양보할만한 것들을 쉽사리 양보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2021 지금은 아닌 것 같네요.
아주 어릴 때 탁구를 했었었습니다. 이후 탁구가 편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농구도 했었습니다. 별명이 아르마딜로였는데 몸을 동그랗게 모아서 공을 잡고 버텨서 그런 이름이 붙었었습니다

+2023 02 21 턱 성장이 느리다는 진단을 받고, 초등학교 고학년 내내 턱교정을 했었습니다. 교정기, 되게 불편하고 징그러웠었는데...
6학년 때 회장을 했었습니다. 회장이 될 지지 같은 것은 없었지만, 후보가 없길래 지원하여 회장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내심 회장이 없는 것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회장 일을 잘 못해서.. 아이들에게 핀잔을 좀 들었고,,, 일을 하니 저는 별 걸 다 지적하는 귀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그 때의 생각입니다.)
오답노트를 적기 싫다고 버티다가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성향 또한 이후 중학교때까지도 이어집니다...
달리기대회 도중 포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달리기가 느렸었고 그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2022 08 01 아마도 이어달리기 대회였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땐 왜 이렇게 마음이 약했던지... 그 땐 친구도 없고, 자존감도 낮고, 뚱뚱해서, 하루종일 학교에 엎드려 있기만 했답니다. 정말... 건서야...ㅠ)
불은 기체, 고체, 액체 중에 무엇이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선 플라즈마 어쩌고 하셨지만 저는 못 알아들었습니다.
방과후수업을 들었습니다. 바둑과 체스, 생명과학, 농구 방과후를 꾸준히 했습니다. 바둑은 바둑 두는 것이 재밌어서 했고, 생명과학은 귀여운 동물 보는 것이 즐거워서 했었습니다. (다만 매미 표본을 만들고, 돼지 폐, 소 눈알 같은 것을 보는 일은 흥미로웠지만 즐겁지 않았습니다. 생명과학 강사께서 운영을 재밌게해서.. 생명과학은 인기있는 방과후였습니다.)농구는 주말에 농구를 했습니다. 운동을 싫어하는 저이지만 그 때 농구는 좋아했었습니다. 아르마딜로라고 불렸던 기억도 납니다. 공을 들고 몸을 둥글게 말아 버텼었습니다. 라바라는 애니메이션과, 고스트바둑왕이라는 애니메이션을 각각 생명과학과 바둑방과후에서 봤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명과학과 바둑은 방과후 시즌 종료 즈음에 애들한테 선물도 주고 그러셨습니다. (+2023 05 29 생명과학은 학기말에 라바 등의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고 과자파티를 하며 성적 순으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나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받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생명과학 방과후를 오랫동안 자주 들었었습니다. 참 괜찮은 선생님이었는데,,, 지금쯤 무얼 하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기계조립방과후같은걸 잠깐 했던 기억도 납니다. 저는 그냥 설명서대로 조립하기만해서 뭘 배운 기억은 없습니다. 부품들과 고무줄을 이용해서 활을 만든 기억도 있습니다. 신나서 나무젓가락 쏘고 다니다가 넘어져서(2022 11 22 분명 교실 안이었는데, 그게 사물함인지... 책꽂이인지... 어디 모서리에 찍혀서) 옆구리에 피가 많이 났습니다. 아프다기보다는 뜨겁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초등학교 때 바둑 방과후 선생님께서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다는 얘기를 하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몇 년 후 알파고가 눈에 띄네요.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알파고가 등장했을겁니다)
죽음이 두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울었던 거 같습니다.
졸업할 때 선생님의 포옹을 거절하고 악수를 청하던 기억이 납니다. 솔직히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그랬습니다만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 선생님께 효과를 효꽈가 아닌 효과로 발음해야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 내내 배운 수업 중에서 그나마 남은 기억입니다.
아람단이라는.. 무슨 수학여행같은거 자주 다니는거에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먼 곳을 여행하고 나면 집이 정말 포근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기차를 제외한 교통 수단을 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두려워했습니다.
개가 키우고 싶었고, 아버지께선 이른 새벽에 수영을 다니면 개를 입양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몇 개월 했던 것 같고, 마침내 지금도 키우는 시바견 토토(첫 이름은 누렁이었으나 식용 같다는 이유로 교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전 토토라는 이름이 조금 싫었습니다. 우파루마운틴이라는 게임의 우파루들 중 겹치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를 얻었습니다. 초4때 즈음입니다.
(2022 11 22 새벽에) 수영을 다니며, 놀 때(2022 11 22 자유시간에) 배 비슷한 게 있었는데.. (2022 11 22 어떤 동생이) 나보고 돼지라고..... 거기에 올라타지 말라고 했던 말에 상처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또 수영을 배움으로써 자유형을 나름 흉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수영을 안 한 지가 오래되어, 여전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글쓰기 능력을 주었습니다. 중학교 단락에서 마저 설명하겠습니다.
만화를 엄청나게 그리던 기억에 남는 친구가 있지만 6학년 때 한 대 맞은 이후로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이외에도 남을 한 대 때리거나 한 대 맞았던.. 싸우던 기억이 몇 있습니다. 중학교 때도 맞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말을 기분 나쁘게 하곤 합니다. 저는 자주 토라지곤 했었습니다. 다만 그 정도야 그 나이대의 평균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6학년 때 어울리는 척 하던 친구들이 기억납니다. 절 거둬주는 듯?한 인상적인 친구가 있습니다. 분명 좋아할 사람이 아니었지만 저를 불러주고 데려다녔습니다.
집에서 형과 공놀이를 하곤 했었습니다. 공으로 축구도 하고, 권투도 하는 등 즐겁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만...
키우던 물고기와 햄스터가 몇 번 씩 죽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도 귀찮아서 큰 관심을 주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될 것입니다. 사체가 징그러웠고,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아주 어릴 때 동네 체육관에서 탁구를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고기, 햄스터를 키웠었습니다. 비파, 가오리비파, 제브라피쉬(+2024 03 13 거북이, 자라, 소라게 등. 대부분 초등학교 생명과학 방과후에서 데려온 동물들입니다.)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귀찮음에 관리를 잘 못해줬던 것 같습니다. 죽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기억(본격적으로 자아라는 것이 형성되었던 시점인 것 같습니다.)
게임과 인터넷생활(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계기: 건의글), 학교생활, 작곡을 시작하게 된 계기, 학원, 건강염려증 및 정신병, 선생들과의 분쟁, 읽은 책, 성, 친가와 외가, 인상적인 친구와 선생들과 나눈이야기, 학교축제, 개인 방의 존재 필요성